논어
季氏
[1] 季氏將伐顓臾. 冉有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夫顓臾, 昔者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爲?”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皆不欲也.” 孔子曰, “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 且爾言過矣, 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冉有曰, “今夫顓臾, 固而近於費. 今不取, 後世必爲子孫憂.” 孔子曰, “求! 君子疾夫舍曰欲之而必爲之辭. 丘也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夫如是, 故遠人不服, 則脩文德以來之. 旣來之, 則安之. 今由與求也, 相夫子, 遠人不服, 而不能來也, 邦分崩離析, 而不能守也, 而謀動干戈於邦內. 吾恐季孫之憂, 不在顓臾, 而在蕭牆之內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염유)야!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겠느냐? 전유는 옛날 선왕께서 동몽주로 삼으셨고, 또한 우리 나라의 영역 안에 있다. 이는 이 나라 사직의 신하인데 어째서 정벌한다는 것이냐?”
염유가 말하였다. “계씨가 그렇게 하려는 것이지, 저희 두 신하는 둘 다 원하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야, 주임이 말하기를 ‘능력을 다 발휘해서 벼슬자리에 나아가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위태로운데도 도와주지 않고 넘어가는데도 붙잡아주지 않는다면, 그런 신하를 장차 어디에 쓰겠느냐? 또한 너의 말이 잘못되었다. 호랑이나 외뿔소가 울에서 뛰쳐나오고, 점치는 거북이나 귀한 옥이 궤 속에서 깨졌다면, 이는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염유가 말하였다. “지금 전유는 성곽이 견고한데다가 계시의 관할인 비에 가깝기 때문에, 지금 빼앗지 않으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들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야! 군자는 자기가 원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그것을 위하여 말을 꾸며대는 것을 미워한다. 내가 듣건대,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이나 토지가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분배가 균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평안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고 했다. 대개 분배가 균등하면 가난이 없고 서로가 화합을 이루면 백성이 적은 것이 문제될 리 없으며, 평안하면 나라가 기울어질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화와 덕망을 닦아서 그들이 따라오도록 하고, 온 다음에는 그들을 평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자로)와 구는 계시를 돕는다면서도, 먼 곳의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데 따라오게 하지도 못하고, 나라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는데도 지키지 못하며, 나라 안에서 군사를 동원하려 꾀하고 있구나. 내가 걱정되는 것은, 계손씨의 근심이 전유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안에 있다는 것이다.”
[2] 孔子曰, “天下有道, 則禮樂征伐自天子出, 天下無道, 則禮樂征伐自諸侯出. 自諸侯出, 蓋十世希不失矣, 自大夫出, 五世希不失矣, 陪臣執國命, 三世希不失矣. 天下有道, 則政不在大夫. 天下有道, 則庶人不議.”
[3] 孔子曰, “祿之去公室五世矣, 政逮於大夫四世矣, 故夫三桓之子孫微矣.”
[4] 孔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辟, 友善柔, 友便佞, 損矣.”
[5] 孔子曰, “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益矣. 樂驕樂, 樂佚遊, 樂晏樂, 損矣.”
[6] 孔子曰, “侍於君子有三愆, 言未及之而言謂之躁, 言及之而不言謂之隱, 未見顔色而言謂之瞽.”
[7] 孔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8] 孔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
[9] 孔子曰, “生而知之者上也, 學而知之者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10] 孔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
[11] 孔子曰,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吾見其人矣, 吾聞其語矣. 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
[12] 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德而稱焉. 伯夷叔齊餓于首陽之下, 民到于今稱之. 其斯之謂與?
[13]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 又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백어가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예전에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서 안뜰에 지나가는데, ‘시를 공부했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아직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했더니,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들과 말을 잘할 수가 없다’라고 하셔서, 저는 물러나 시를 공부했습니다. 다른 날에 또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서 안뜰을 지나가는데, ‘예(禮)를 공부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아직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했더니, ‘예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들 앞에 설 수가 없다’라고 하셔서, 저는 물러나 예를 공부했습니다. 제가 들은 것은 이 두 가지입니다.”
진강이 물러 나와서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하나를 물어서 세 가지를 알게 되었다. 시에 대하여 듣고, 예에 관하여 들었으며, 또 군자는 자기 자식에게 거리를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4] 邦君之妻, 君稱之曰夫人, 夫人自稱曰小童, 邦人稱之曰君夫人, 稱諸異邦曰寡小君, 異邦人稱之亦曰君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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