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微子
[1]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2] 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유하혜가 대답하였다. “도(道)를 곧게 지키며 남을 섬긴다면, 어디에 간들 세 번은 쫓겨나지 않겠습니까? 도를 굽혀 남을 섬긴다면,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날 필요가 있겠습니까?”
[3] 齊景公待孔子曰, “若季氏, 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4] 齊人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
[5] 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已而! 今之從政者殆而!”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리시어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고자 하셨으나, 종정걸음으로 피하였으므로,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지 못하셨다.
[6]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羣,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장저가 말하였다. “저 수레에서 고삐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신가?”
자로가 말하였다. “공구(공자)이십니다.”
“바로 그 노나라의 공구이신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루터를 아실 게요.”
걸익에게 물으니, 걸익이 말하였다. “선생은 누구시오?”
“중유(자로)라고 합니다.”
“바로 그 노나라 공구의 제자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큰 물이 도도히 흐르듯 천하는 모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데, 누가 그것을 바꾸겠소? 또한 당신도 사람을 피해 다니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어찌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을 따르는 것만 하겠소?” 그는 뿌린 씨를 흙으로 덮으며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7] 子路從而後, 遇丈人, 以杖荷蓧. 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子路拱而立. 止子路宿, 殺雞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 明日, 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絜其身, 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노인이 말하였다. “팔다리로 부지런히 일도 하지 않고, 오곡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선생님이란 말이오?” 그는 그 지팡이를 꽂아 세워 놓고는 김을 맸다. 자로가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고 서 있자, 자로를 붙잡아 머물도록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이고 그의 두 아들을 만나 보게 하였다.
다음날 자로가 가서 그 일을 아뢰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자로구나.” 그리고는 자로를 시켜 돌아가서 그를 만나보도록 하셨으나, 자로가 그곳에 이르니 이미 떠나 버렸다. 자로가 그 집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관직에 나가지 않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어른과 아이 사이의 예절도 폐기할 수 없는 것인데, 임금과 신하 사이의 도의를 어찌 폐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하여 큰 윤리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군자가 벼슬을 하는 것은 그런 도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이미 알고 있는 일입니다.”
[8] 逸民, 伯夷, 叔齊, 虞仲, 夷逸, 朱張, 柳下惠, 少連.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 叔齊與!” 謂柳下惠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9] 大師摯適齊,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鼓方叔入於河, 播鼗武入於漢, 少師陽, 擊磬襄, 入於海.
[10] 周公謂魯公曰, “君子不施其親, 不使大臣怨乎不以. 故舊無大故, 則不棄也. 無求備於一人!”
[11] 周有八士, 伯達, 伯适, 仲突, 仲忽, 叔夜, 叔夏, 季隨, 季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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