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 뿌리를 뽑아야 한다(1.초견진.2)
뿌리를 뽑아야 한다(1.초견진.2)
뿌리를 뽑아야 한다
- 한비자 제1편 초견진[2]-
옛날 제나라는 남쪽으로 초나라를 격파하고 동쪽으로는 송나라를 격파하였으며,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정복하였고, 북쪽의 연나라를 정복하였으며, 중앙에서는 한과 위 두 나라를 종속시켰으며, 영토는 광대하고 군대는 강대하여 싸우면 반드시 승리를 하였습니다. 제나라의 맑은 제수와 황하는 국경이 되어 주었고, 장성과 거대한 제방은 요새가 되었습니다. 그런 제나라는 과거에 다섯 차례나 승리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연나라와의 단 한번의 싸움으로 거의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한 나라의 존망을 결정하는 중대사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물의 근본을 없애려면 뿌리를 뽑아야 하며, 화를 가까이 하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제나라는 연나라를 철저히 멸망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입게 된 것입니다.
진(陳)나라는 과거에 초나라를 격파하여 동정과 오호와 강남의 땅을 빼앗았고, 초나라 왕은 신하와 함께 진나라로 숨은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진나라가 초나라 왕을 추격하였더라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속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다면 동쪽에서는 제나라나 연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중앙의 한과 위와 조나라의 삼진을 다스릴 수도 있었을 것이며, 단번에 패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모신(謀臣)은 군대를 철수시키고, 초나라와 강화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 초나라 사람은 진에 빼앗긴 국토를 다시 수복하여 이산된 백성을 모으고, 종묘를 세워 진에 대항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여러 나라는 연합하여 화산 아래에 진지를 구축하였습니다. 대왕은 선전포고를 하여 연합군을 격파하였으며, 진의 군대는 위나라의 서울 양의 성 밑까지 이르렀습니다. 만일 이 때 수십일 동안만 양을 포위하였더라면 함락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양을 공격하면 위나라를 격파할 수 있었을 것이고, 위나라와 통하고 있던 조나라와 초나라 사이를 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나라는 위태로워졌을 것이 틀림없고, 초는 불안해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연나라의 세력을 꺾고, 중앙의 한과 위와 조나라 등을 쳐 패왕이 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신은 군대를 철수시켜 위나라와 강화를 하고, 그 결과 위나라는 잃었던 국토를 다시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진나라가 패왕이 되지 못한 두 번째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진나라의 재상 양후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무렵, 첫째는 진나라를 위하여 공을 세우고, 둘째는 영토를 확대하겠다는 두 가지 일 때문에 병사는 평생 국외에서 싸우게 되었고, 백성은 피폐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진이 패왕이 되지 못한 세 번째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 韓非子 第1篇 初見秦[2]-
臣敢言之. 往者齊南破荊, 東破宋, 西服秦, 北破燕, 中使韓· 魏, 土地廣而兵强, 戰剋攻取, 詔令天下. 齊之淸濟濁河, 足以爲限 長城巨防, 足以爲塞. 齊, 五戰之國也, 一戰不剋而無齊. 由此觀之, 夫戰者, 萬乘之存亡也.
且聞之曰:「削迹無遺根, 無與禍鄰, 禍乃不存.」 秦與荊人戰, 大破荊, 襲郢, 取洞庭· 五湖· 江南. 荊王君臣亡走, 東服於陳. 當此時也, 隨荊以兵, 則荊可擧 荊可擧, 則其民足貪也, 地足利也, 東以弱齊· 燕, 中以凌三晉. 然則是一擧而霸王之名可成也, 四鄰諸侯可朝也 而謀臣不爲, 引軍而退, 復與荊人爲和. 令荊人得收亡國, 聚散民, 立社稷主, 置宗廟 令率天下西面以與秦爲難. 此固以失霸王之道一矣.
天下又比周而軍華下, 大王以詔破之, 兵至梁郭下. 圍梁數旬, 則梁可拔 拔梁, 則魏可擧 擧魏, 則荊· 趙之意絶 荊· 趙之意絶, 則趙危 趙危而荊狐疑 東以弱齊· 燕, 中以凌三晉. 然則是一擧而霸王之名可成也, 四鄰諸侯可朝也 而謀臣不爲, 引軍而退, 復與魏氏爲和. 令魏氏反收亡國, 聚散民, 立社稷主, 置宗廟令. 此固以失霸王之道二矣.
前者穰侯之治秦也, 用一國之兵而欲以成兩國之功, 是故兵終身暴露於外, 士民疲病於內, 霸王之名不成. 此固以失霸王之道三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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