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 인의는 예의와 질서 안에서 존재한다(36.논난.1.6)
인의는 예의와 질서 안에서 존재한다(36.논난.1.6)
인의는 예의와 질서 안에서 존재한다
- 한비자 제36편 논난(1)[6]-
제나라 환공 때에 어떤 처사가 있었다. 그 이름을 소신직이라 했다. 환공이 세 차례나 방문했으나 만날 수가 없었다. 환공이 말했다.
“벼슬을 하지 않는 선비는 작록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므로 만승의 군주를 대수롭게 않게 여기는 것이며, 만승의 군주는 인의(仁義)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벼슬하지 않는 선비에게 머리를 수그리지 못한다.”
그래서 다섯 번이나 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환공은 인의의 의미도 모르고 있다. 대체로 인의란 것은 천하의 해를 걱정하고 한 나라의 위난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자기 몸이 창피를 당하거나 학대를 받아도 개의치 않는다. 그것을 인의라고 한다. 그래서 이윤은 하나라가 도를 문란하게 하는 정치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요리사가 되어 은나라 탕왕을 섬기기를 원했고, 백리해는 진나라가 문란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 진나라 목왕을 섬기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모두가 천하의 해를 걱정하고, 한 나라의 위난에 뛰어들어 창피를 당하고 학대를 받아도 상관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인의라고 하는 것이다.
환공이 만승 대국의 권세를 지니고 있으면서, 신분이 천한 자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제나라의 위난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소신직은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소신직이 백성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이란 것을 잊고서는 인의를 행할 수가 없다. 인의란 예의를 잊지 않고 임금과 신하간의 질서를 해치지 않음으로서 가능하다.
그 나라의 영토 안에 있으면서, 금(禽:처음으로 군주를 만날 때 예의로 바치는 새)을 들고 군주와 만나는 자를 신하라고 하며, 관직을 분담하고 일을 맡은 관리를 맹(萌)이라고 한다. 그런데 소신직은 민맹(民萌)에 속하고 있으면서 군주의 요청을 위반하고 있다. 그래서 인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인의가 없는 자에 대해서도 환공은 주저하지 않고 경의를 표했다. 만일 소신직이 재능이 있는데도 환공을 피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숨은 것이다. 반드시 체형을 가해야 했을 것이다. 만일 재능도 없이 겉으로만 환공에 대해서 오만불손했다고 하면 기만한 셈이다.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했다. 요컨대 소신직의 행위는 체형이나 사형을 가해야 했던 것이다.
환공은 군신의 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체형이나 사형에 처해야 할 인물을 예우한 것이다. 이 사실은, 환공이 위를 경시하며 군주를 멸시하는 풍조를 제나라에 가져오게 했다. 국가를 통치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환공은 인의를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 韓非子 第36篇 論難(一)[6]-
齊桓公時, 有處士曰小臣稷, 桓公三往而弗得見. 桓公曰:「吾聞布衣之士不輕爵祿, 無以易萬乘之主 萬乘之主不好仁義, 亦無以下布衣之士.」 於是五往乃得見之.
或曰: 桓公不知仁義. 夫仁義者, 憂天下之害, 趨一國之患, 不避卑辱, 謂之仁義. 故伊尹以中國爲亂, 道爲宰于湯 百里奚以秦爲亂, 道爲虜于穆公. 皆憂天下之害, 趨一國之患, 不辭卑辱, 故謂之仁義. 今桓公以萬乘之勢, 下匹夫之士, 將欲憂齊國, 而小臣不行, 見小臣之忘民也. 忘民不可謂仁義. 仁義者, 不失人臣之禮, 不敗君臣之位者也. 是故四封之內, 執會而朝名曰「臣」, 臣吏分職受事名曰「萌」. 今小臣在民萌之衆, 而逆君上之欲, 故不可謂仁義. 仁義不在焉, 桓公又從而禮之. 使小臣有智能而遁桓公, 是隱也, 宜刑 若無智能而虛驕矜桓公, 是誣也, 宜戮. 小臣之行, 非刑則戮. 桓公不能領臣主之理而禮刑戮之人, 是桓公以輕上侮君之俗敎於齊國也, 非所以爲治也. 故曰:「桓公不知仁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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