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충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된다(10.십과.9)
충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된다
- 韓非子 한비자 제10편 십과[9]-
과실을 범하면서도 충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옛날 제나라의 환공이 제후를 몇 차례나 모아 천하를 다스려 통일하고, 패왕이 된 적이 있었다. 관중이 그를 보좌했었는데 그가 늙어 보좌하지 못하게 되자 은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느날 환공이 그를 찾아가서 물었다.
“중부께 불행한 일이라도 생기시면 누구에게 정치를 맡기면 좋겠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저는 이제 노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신하를 아는 데는 군주를 따를 자가 없고, 자식을 아는 데는 어버이를 따를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왕께서 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환공은 물었다.
“포숙아가 어떻겠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안됩니다. 포숙아는 인물이 사납고 고집이 세며 포악합니다. 사나우면 백성을 난폭하게 다룰 것이며, 고집이 세면 인망을 얻지 못할 것이며, 포악하면 백성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생각이 천박하므로 패자의 보좌에는 부적당합니다.”
환공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수조는 어떻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안됩니다. 누구나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인정입니다. 그런데 수조는 왕께서 질투심이 강하고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시가 되어 궁정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몸마저 소중히 하지 않는 자가 어찌 군주를 섬기겠습니까?”
환공이 물었다.
“위나라의 공자 개방은 어떻겠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안됩니다. 제나라와 위나라 사이는 불과 10일 거리밖에 되지 않는데, 개방은 왕의 비위를 맞추려고 15년 동안이나 위나라에 있는 아버지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군주를 섬기겠습니까?”
환공이 물었다.
“역아는 어떻겠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안됩니다. 역아는 원래 궁정 요리사로써 왕께서 아직 잡수어 보시지 못한 음식은 사람고기 뿐이라 하여 제 장남을 삶아 왕께 바친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군주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환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좋겠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습붕이 좋을 것입니다. 그 인물은 마음이 견실하며 행실에 절도가 있고, 또 욕심이 없으며, 신의가 두텁습니다. 마음이 견실하면 사표가 될 수 있으며 임무를 맡길 수 있고, 욕심이 없으면 민중을 다스릴 수 있고, 신의가 두터우면 이웃나라와 친교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이 바로 패자를 보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 1년이 지나 관중이 죽었다. 그런데 환공은 습붕 대신 수조에게 정치를 맡겼다. 수조가 집권하고 3년이 되었다. 환공은 남쪽의 당부에 유람을 했는데, 수조는 그 틈을 타 역아, 개방 그리고 그 밖의 무리들과 반란을 일으켰다.
환공은 귀국했으나 먹을 것이 없어 남문의 수문장이 있는 초소에서 죽고 말았다. 환공이 죽은 뒤 3개월이 되도록 매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 속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는 형편이었다. 관중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과실을 범했으면서도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세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 韓非子 第10篇 十過[9]-
奚謂過而不聽於忠臣? 昔者齊桓公九合諸侯, 一匡天下, 爲五伯長, 管仲佐之. 管仲老, 不能用事, 休居於家. 桓公從而問之曰:「仲父家居有病, 卽不幸而不起, 政安遷之?」 管仲曰:「臣老矣, 不可問也. 雖然, 臣聞之, 知臣莫若君, 知子莫若父. 君其試以心決之.」 君曰:「鮑叔牙何如?」 管仲曰:「不可. 鮑叔牙爲人, 剛愎而上悍. 剛則犯民以暴, 愎則不得民心, 悍則下不爲用. 其心不懼, 非霸者之佐也.」 公曰:「然則竪刁何如?」 管仲曰:「不可. 夫人之情莫不愛其身. 公妬而好內, 竪刁自獖以爲治內. 其身不愛, 又安能愛君?」 曰:「然, 則衛公子開方何如?」 管仲曰:「不可. 齊· 衛之間不過十日之行, 開方爲事君, 欲適君之故, 十五年不歸見其父母, 此非人情也. 其父母之不親也, 又能親君乎?」 公曰:「然則易牙何如?」 管仲曰:「不可. 夫易牙爲君主味. 君之所未嘗食唯人肉耳, 易牙蒸其子首而進之, 君所知也. 人之情莫不愛其子, 今蒸其子以爲膳於君, 其子弗愛, 又安能愛君乎?」 公曰:「然則孰可?」 管仲曰:「隰朋可. 其爲人也, 堅中而廉外, 少欲而多信. 夫堅中, 則足以爲表 廉外, 則可以大任 少欲, 則能臨其衆 多信, 則能親鄰國. 此霸者之佐也, 君其用之.」 君曰:「諾.」 居一年餘, 管仲死, 君遂不用隰朋而與竪刁. 刁竪事三年, 桓公南遊堂阜, 竪刁率易牙· 衛公子開方及大臣爲亂. 桓公渴餒而死南門之寢· 公守之室, 身死三月不收, 蟲出於戶. 故桓公之兵橫行天下, 爲五伯長, 卒見弑於其臣, 而滅高名, 爲天下笑者, 何也? 不用管仲之過也. 故曰: 過而不聽於忠臣, 獨行其意, 則滅其高名爲人笑之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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