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예가 복잡하게 됨은 내심이 빈약한 증거이다(20.해노.3)
예가 복잡하게 되는 것은 내심이 빈약한 증거이다
- 한비자 제20편 해노[3]-
모든 일은 동시에 성황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음양이 그것이다. 도리상 주는 일과 빼앗는 일과 같이 상반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가령 위세와 덕, 그러니까 형벌과 은상이다. 내실에 충실해지면 외모가 빈약하게 되는 것은 부자 사이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예가 복잡하게 되는 것은 내심이 빈약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예를 행한다는 것은 사람의 그대로의 진정을 상대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예를 행하는 것을 보면 타인이 답례를 하면 기뻐하고 답례를 하지 않으면 상대를 책망한다. 오늘날 예를 행하는 자는 자기 진정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그 예에 서로가 책망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싸움이 일어난다. 싸우면 혼란이 일어난다. 그래서 노자는「예는 충신(忠信)의 정이 빈약하기 때문에 비롯한 것으로서 혼란의 시초가 된다」고 한 것이다.
또 일이 일어나기 전에, 혹은 도리가 확실치 않은데 행동을 하며 생각하는 것을 전식(前識)이라고 한다. 전식이란 실제상의 단서가 없는데도 엉터리로 억측하는 것을 말한다. 왜 그런가 하면 초나라의 은자 첨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방안에서 제자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때마침 문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제자가 말했다.
“저 소는 검은 소로 이마가 희지요.”
첨하는 수긍했다.
“그렇다. 검은 소다. 그러나 흰 것은 뿔이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본 결과 과연 검은 소이기는 했으나 흰 천으로 뿔을 감싼 것이었다. 이와 같은 첨하의 수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겉치레는 화려하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길가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라고 했다. 가령 첨하의 억측에 의하지 않고, 열 살 정도의 소년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검은 소일 것이고, 뿔은 흰 천으로 감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첨하와 같은 억측은 남의 마음을 괴롭히게 하는 효과를 얻는데 불과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노자는 그런 경우를「어리석음의 시초가 된다」고 한 것이다.
- 韓非子 第20篇 解老[3]-
凡物不竝盛, 陰陽是也 理相奪予, 威德是也 實厚者貌薄, 父子之禮是也. 由是觀之, 禮繁者, 實心衰也. 然則爲禮者, 事通人之樸心者也. 衆人之爲禮也, 人應則輕歡, 不應則責怨. 今爲禮者事通人之朴心而資之以相責之分, 能毋爭乎? 有爭則亂, 故曰:「夫禮者, 忠信之薄也, 而亂之首乎.」
先物行先理動之謂前識. 前識者, 無緣而忘意度也. 何以論之? 詹何坐, 弟子侍, 有牛鳴於門外. 弟子曰:「是黑牛也而白在其題.」 詹何曰:「然, 是黑牛也, 而白在其角.」 使人視之, 果黑牛而以布裹其角. 以詹子之術, 嬰衆人之心, 華焉殆矣!故曰:「道之華也.」 嘗試釋詹子之察, 而使五尺之愚童子視之, 亦知其黑牛而以布裹其角也. 故以詹子之察, 苦心傷神, 而後與五尺之愚童子同功, 是以曰:「愚之首也.」 故曰:「前識者, 道之華也, 而愚之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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