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 공격을 하였으면 끝을 보아야 한다(1.초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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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공격을 하였으면 끝을 보아야 한다(1.초견진.3)

 

공격을 하였으면 끝을 보아야 한다

- 한비자 제1편 초견진[3]-

조나라는 중앙에 위치한 나라로 이웃 여러 나라에서 백성들이 모여들어 섞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경박하고 쓸모가 없었습니다. 명령은 제대로 하달되지 못하였고, 상벌은 믿을 수 없었으며, 지형도 지키기에 불편하였을 뿐 아니라. 국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조나라는 망국의 형세에 있으면서도 민중을 돌보지 않고 강제로 징발하여 진나라와 한나라의 상당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 대왕께서는 이것을 공격하여 무안을 공략하셨습니다. 이 때 그들은 상하가 서로 믿지 않았고, 귀천이 화합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나라의 서울 한단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이 때 진이 그곳을 격파하고 산동 하간을 지배한 다음, 다시 서쪽으로 나가 수무를 공격하여 대와 상당을 위협하였더라면 대의 46현과 상당의 70현을 한 명의 전사자도 내지 않고 진나라의 영토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와 상당을 싸우지 않고도 진나라의 소유로 두고, 조나라가 진나라 때문에 약화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제나라와 연나라는 방관하지 않고 움직이게 될 것이므로 원래 제나라의 땅이었던 동양하의 외부는 싸우지 않고도 제나라의 땅이 되었을 것이며, 중산 이북의 토지도 싸우지 않고 모두 연나라의 소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조나라는 붕괴하게 되었을 것이며, 이윽고 한과 초와 위나라가 독립을 이룩할 수 없게 되어 단번에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를 격파하여 초나라를 공략할 수 있고, 그 뿐만 아니라 동쪽의 연과 제나라를 약화시키고 백마강의 하구를 부수게 하여 황하물로 위나라를 쳐 한과 위와 조나라를 멸망케 하면 동맹은 자연 해산될 것이며, 대왕께서 그것을 기다리고 계시는 동안 열국은 슬슬 항복해 올 것이니 패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하들은 그러한 방책을 채택하지 않고 군대를 철수시켜 또 조나라와 강화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영특하시고, 더욱이 군대는 정예함에도 불구하고 패왕이 될 수 있는 대업을 버리시고 적국의 토지를 조금도 빼앗지 않고, 오히려 패망한 조나라에 기만을 당하고 계시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신하들의 처사가 졸렬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진의 모신을 무위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첫째 이유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또 군대를 차출하여 조나라의 한단을 공격했던 것인데 함락하지 못하고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은 진의 실력을 얕보게 된 둘째 이유가 됩니다.

한단에서 퇴각한 군대는 이백의 성 밑에 집결했다가 패왕의 군대와 함께 조나라와 싸웠으나 모두 지쳐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진의 실력을 얕보게 한 셋째 원인입니다.

이와 같이 조나라와의 전쟁의 실패를 통하여 안으로는 신하의 무능하고 무지함이 드러났고 밖으로는 병력을 지치게 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보아도 열국 사이의 동맹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안으로는 군대가 지쳐 있고, 국민은 고생을 하고 있었으며, 농토는 황폐하여 곡창은 비게 되었고, 밖으로는 대왕에 대한 열국의 적개심이 상당히 공고하였던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그 점을 잘 살피셔야 할 것입니다.

- 韓非子 第1篇 初見秦[3]-

趙氏, 中央之國也, 難民所居也, 其民輕而難用也. 號令不治, 賞罰不信, 地形不便, 下不能盡其民力. 彼固亡國之形也, 而不憂民萌, 悉其士民軍於長平之下, 以爭韓上黨. 大王以詔破之, 拔武安. 當是時也, 趙氏上下不相親也, 貴賤不相信也. 然則邯鄲不守. 拔邯鄲, 筦山東河間, 引軍而去, 西攻修武, 踰華絳上黨. 代四十六縣, 上黨七十縣, 不用一領甲, 不苦一士民, 此皆秦有也. 代· 上黨不戰而畢爲秦矣, 東陽· 河外不戰而畢反爲齊矣, 中山· 呼沲以北不戰而畢爲燕矣. 然則是趙擧, 趙擧則韓亡, 韓亡則荊, 魏不能獨立, 荊· 魏不能獨立, 則是一擧而壞韓, 蠹魏· 拔荊, 東以弱燕· 齊, 決白馬之口以沃魏氏, 是一擧而三晉亡, 從者敗也. 大王垂拱以須之, 天下編隨而服矣, 霸王之名可成. 而謀臣不爲, 引軍而退, 復與趙氏爲和. 夫以大王之明, 秦兵之强, 棄霸王之業, 地曾不可得, 乃取欺於亡國, 是謀臣之拙也. 且夫趙當亡而不亡, 秦當霸而不霸, 天下固以量秦之謀臣一矣. 乃復悉士卒以攻邯鄲, 不能拔也, 棄甲兵弩, 戰竦而卻, 天下固已量秦力二矣. 軍乃引而退, 幷於李下, 大王又幷軍而至, 與戰不能剋之也, 又不能反, 運罷而去, 天下固量秦力三矣. 內者量吾謀臣, 外者極吾兵力. 由是觀之, 臣以爲天下之從, 幾不難矣. 內者, 吾甲兵頓, 士民病, 蓄積索, 田疇荒, 囷倉虛. 外者, 天下皆比意甚固. 願大王有以慮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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