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진리의 말은 귀에 거슬린다(3.난언.2)
진리의 말은 귀에 거슬린다
- 한비자 제3편 난언[2]-
옛날 은나라의 탕왕은 성인이었고, 이윤은 큰 지자였습니다. 최고의 지자가 최고의 성인을 설득했었으니 서로 통했을 것인데도 이윤은 70회에 걸쳐 설득했지만 탕왕은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요리사가 되어 접근하게 되자, 탕왕은 겨우 이윤의 현명함을 알게 되어 그를 채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지자가 최고의 성자를 설득하려 해도 만나는 것만으로는 설득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생겼고, 이윤이 탕왕을 설득한 경우가 그에 해당합니다.
지자가 우자를 설득한 경우의 얘기가 있는데 그것은 허사입니다. 주나라의 문왕이 주왕을 설득한 예가 그것입니다. 문왕은 주왕의 못된 점을 설득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그는 체포되어 화형을 당했습니다. 귀후는 살해를 당하여 그 시체는 말려졌으며, 비간은 앞가슴을 찔리었고, 은나라의 매백은 소금에 절여 죽었으며, 관중은 새끼줄에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기는 전쟁을 말리려다 추방되었고, 진나라의 백리는 거지가 됐으며, 은나라의 재상 부열은 유배당했으며, 손자는 위나라에서 발목이 잘리었습니다. 오기는 모함을 당하여 대문 밖에 쫓기어 서하가 진나라의 영토가 된 것을 슬퍼하며 위나라를 떠났고 초나라에 가서 사지가 찢기었습니다. 위나라의 공숙좌는 공손앙을 명재상이라고 추천했으나 천만부당하다 하여 거절을 당했을 뿐 아니라 공손앙은 진나라에서 도망해야 했었습니다. 하나라의 관용봉은 목이 잘리었으며, 주나라의 장홍은 창자가 잘리어서 죽었습니다. 윤자는 가시덤불의 함정에 밀려들어갔으며, 초나라의 사마자기는 강물에 그 시체가 띄워졌고, 전명은 책형을 당했습니다. 공자의 제자 서문표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살해당했고, 조나라의 동안자는 목매달려 거리를 끌리어 다녔으며, 재여는 죽음을 당했고, 범수는 모함을 당하여 위나라에서 늑골이 꺾이어 죽었습니다.
이상 얘기한 사람들은 모두가 인덕과 현명한 재주를 갖춘 충실한 신하요, 도술에 통달한 선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현명치 못한 군주를 만나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성인 현자가 이처럼 죽음을 당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미욱한 자를 설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군자는 소견을 피력하기를 삼가는 것입니다. 진리는 귀에 거슬리는 법이고, 들어서 기분이 개운치 않은 것이므로 성현군자가 아니면 그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왕께서도 우설(愚說)을 잘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 韓非子 第3篇 難言[2]-
上古有湯, 至聖也: 伊尹, 至智也. 夫至智說至聖, 然且七十說而不受, 身執鼎俎爲庖宰, 昵近習親, 而湯乃僅知其賢而用之. 故曰: 以至智說至聖, 未必至而見受, 伊尹說湯是也 以智說愚必不聽, 文王說紂是也. 故文王說紂而紂囚之 翼侯炙 鬼侯腊, 比干剖心 梅伯醢 夷吾束縛 而曹覊奔陳 伯里子道乞 傅說轉鬻 孫子臏脚於魏 吳起收泣於岸門, 痛西河之爲秦, 卒枝解於楚 公叔痤言國器反爲悖, 公孫鞅奔秦 關龍逢斬 萇宏分胣 尹子穽於棘 司馬子期死而浮於江 田明辜射 宓子賤· 西門豹不斗而死人手 董安於死而陳於巿 宰予不免於田常 范雎折脅於魏. 此十數人者, 皆世之仁賢忠良有道術之士也, 不幸而遇悖亂闇惑之主而死. 然則雖賢聖不能逃死亡避戮辱者何也? 則愚者難說也, 故君子難言也. 且至言忤於耳而倒於心, 非賢聖莫能聽, 願大王熟察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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