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 법을 괴롭게 여기고 구속받기를 싫어한다(13.화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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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법을 괴롭게 여기고 구속받기를 싫어한다(13.화씨.3)

 

법을 괴롭게 여기고 구속받기를 싫어한다

- 한비자 제13편 화씨[3]-

옛날에 오기가 초 도왕에게 초나라의 풍속에 대하여 말했다.

「대신의 세력이 지나치게 큽니다. 그리고 봉군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만약 이대로 간다면 그들이 위로는 임금을 핍박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못살게 굴 것이니, 이것은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고 군대를 약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봉군의 자손으로 3대가 되거든 그 작록을 회수하고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삭감하며, 긴급하지 않은 관원을 폐지함으로써 정선되고 노련한 선비를 기르도록 하십시오.」

초 도왕이 그대로 실행했다. 1주년 뒤에 도왕이 죽었다. 오기는 그동안 미움을 받고 있던 터라 초나라에서 사지를 찢기는 형벌을 받았다.

옛날 상앙은 진 효공에게, 백성 10호를 한 통으로 연결하고 5호를 한 반으로 묶어서 서로 고발하고 연대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를 설치하며, 또 시서를 불태워 버리고 법령만을 밝게 할 것과, 사사로운 청탁을 막고 국가의 노역을 권장하게 할 것과, 벼슬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백성이 없게 하고, 농사짓고 싸움에 참가하는 선비를 표창하라고 가르쳤다. 효공이 그대로 실행하니, 이로써 임금은 존엄하고 편안하며 나라는 부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8년 뒤에 효공이 죽자 상앙은 거열의 형을 당했다.

초나라는 오기의 헌책을 채용하지 아니하여 국토가 깎이고 내란이 일어났으며, 진나라는 상앙의 법을 시행하여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말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기는 4지를 찢기고 상앙은 거열을 당하였음은 무슨 까닭인가. 대신은 법을 괴롭게 여기고 간세(奸細)한 백성들은 잘 다스려지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신은 권세가 무거워지기를 탐하고, 간세한 백성들이 혼란한 것을 편안하게 여김이 진나라나 초나라의 풍속보다도 심하며, 임금은 초 도왕이나 진 효공처럼 말을 받아들이는 이가 없으니 법술을 지닌 선비가 어떻게 오기· 상군 두 사람이 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법술을 밝힐 수 있겠는가. 이것이 세상은 어지럽고 패업을 성취하는 임금은 없게 되는 까닭이다.

- 韓非子 第13篇 和氏[3]-

昔者吳起敎楚悼王以楚國之欲曰:「大臣太重, 封君太衆. 若此, 則上偪主而下虐民, 此貧國弱兵之道也. 不如使封君之子孫, 三世而收爵祿, 絶滅百吏之祿秩, 損不急之枝官, 以奉選練之士.」 悼王行之期年而薨矣, 吳起枝解於楚. 商君敎秦孝公以連什伍, 設告坐之過, 燔詩書而明法令, 塞私門之請而遂公家之勞, 禁遊宦之民而顯耕戰之士. 孝公行之, 主以尊安, 國以富强, 八年而薨, 商君車裂於秦. 楚不用吳起而削亂, 秦行商君法而富强. 二子之言也已當矣, 然而枝解吳起而車裂商君者, 何也? 大臣苦法而細民惡治也. 當今之世, 大臣貪重, 細民安亂, 甚於秦· 楚之俗, 而人主無悼王· 孝公之聽, 則法術之士, 安能蒙二子之危也而明己之法術哉? 此世所亂無霸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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