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남을 믿음으로 위험하다(17.비내.1)
남을 믿음으로 위험하다
- 한비자 제17편 비내[1]-
군주의 근심거리는 남을 믿는 데에 있다. 남을 믿으면 남에게 제압을 당한다.
신하는 그의 임금에 대하여 핏줄로 이어진 육친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위세에 얽매여 섬기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그러므로 남의 신하된 자는 그 군주의 마음을 엿보기에 잠시도 쉴 사이가 없는데, 군주는 태만하고 오만하게 그 위에 앉아 있다. 이것이 세상에서 임금을 위협하고 군주를 시해하는 신하가 생기게 되는 까닭이다.
군주가 되어 지나치게 자기 아들을 사랑하면, 간신이 그 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성취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태는 조나라 혜문왕에게 붙어서 문왕의 아버지 무령왕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
군주가 되어 아내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간신은 그 아내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성취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시는 진나라 헌공의 애첩 여희에게 붙어서 헌공의 후계자인 신생을 죽이고 여희의 아들 해계를 세웠다.
군주는 자기와 가장 가까운 아내와, 가장 친애하는 아들도 오히려 믿을 수가 없다. 그러니 그밖에 다시 믿을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
또 만승의 나라의 군주이나 천승의 나라의 군주에게 있어 그 후비나 부인으로서 자신의 아들이 태자로 봉해졌을 경우 간혹 군주가 일찍 죽기를 바라는 수가 있다.
대체로 아내라는 것은 핏줄을 나눈 육친이 아니다. 사랑하면 친근하여지고 사랑하지 않으면 소원하여진다. 속담에 이르기를 「그 어미를 좋아하면 그 아들도 귀여워서 끌어안는다」고 했다. 그 말을 뒤집어 보면, 「그 어미를 미워하면 그 아들도 버린다」는 말이 된다.
남자는 50세가 되어도 호색하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는 30세가 되면 아름다운 자태가 시들어 버린다. 아름다움이 시든 여자로서 호색한 남자를 섬기게 되면 자신이 소외되고 천대받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자기의 아들이 군주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지나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곧 후비나 부인이 그의 군주가 죽기를 바라게 되는 이유이다.
어머니가 태후가 되고 아들이 군주가 되면,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게 된다. 또한 남녀간의 즐거움도 자기 마음대로 자행할 수 있으므로 군주가 살아 있을 때와 다름이 없으며, 만승의 큰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것이 군주를 독살하고 몰래 목을 졸라 죽이는 일이 생기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도올춘추에 말하기를,「군주로서 병들어 죽는 자는 전체의 반도 못 된다」고 했다. 군주가 이것을 모르니 그러한 환란의 소지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의 죽음을 이롭게 여기는 자가 많으면 군주는 위태롭다
- 韓非子 第17篇 備內[1]-
人主之患在於信人. 信人, 則制於人. 人臣之於其君, 非有骨肉之親也, 縛於勢而不得不事也. 故爲人臣者, 窺覘其君心也無須臾之休, 而人主慠處其上, 此世所以有劫君弑主也. 爲人主而大信其子, 則姦臣得乘於子以成其私, 故李兌傅趙王而餓主父. 爲人主而大信其妻, 則姦臣得乘於妻以成其私, 故優施傅麗姬殺申生而立奚齊. 夫以妻之近與子之親而猶不可信, 則其餘無可信者矣.
且萬乘之主, 千乘之君, 后妃夫人適子爲太子者, 或有欲其君之蚤死者. 何以知其然, 夫妻者, 非有骨肉之恩也, 愛則親, 不愛則疏. 語曰:「其母好者其子抱.」 然則其爲之反也, 其母惡者其子釋. 丈夫年五十而好色未解也, 婦人年三十而美色衰矣. 以衰美之婦人事好色之丈夫, 則身死見疏賤, 而子疑不爲後, 此后妃, 夫人之所以冀共君之死者也. 唯母爲後而子爲主, 則令無不行, 禁無不止, 男女之樂不減於先君, 而擅萬乘不疑, 此鴆毒扼昧之所以用也. 故< 桃左春秋> 曰:「人主之疾死者不能處半.」, 人主弗知, 則亂多資. 故曰: 利君死者衆, 則人主危.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