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저울추를 바꿀 수는 없다(47.팔설.5)
저울추를 바꿀 수는 없다
- 한비자 제47편 8설[5]-
법칙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존재하고, 일은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 한다. 입법에는 곤란이 따르지만, 그 곤란을 조사해 보고 그 일이 성립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면 그 법을 제정하고 어떤 일이 성립하면 해가 따르는 법이지만 그 해를 조사하여 공로가 많으면 그 일을 한다. 곤란이 따르지 않는 법, 해가 따르지 않는 공로는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성벽이 높은 도읍을 공략하며 10만의 대군을 격파하는데, 이 편의 전사자가 절반이 되고, 투구나 무기가 파괴되더라도, 전쟁에 승리하여 땅을 점유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것은 조그만 손해를 감수하고 큰 이익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빠지기 마련인 것이며, 병을 고치려는 자는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기 마련인 것이다. 사람을 다스릴 경우, 그에 따르는 곤란을 보고 이것을 버리는 것은 지혜롭지 않은 처사이다.
옛날 성왕의 말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잣대의 끝도 닳을 수 있고, 수준기의 물도 마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바꾸려 해도 다른 것이 없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임기응변의 본질을 알고 있는 말이다. 논리의 전개는 훌륭하지만 실용성이 없는 말도 있고, 말은 졸렬하지만 실용성이 있는 것이 있다. 그래서 성인은 해가 전혀 없는 말을 찾지 않고, 실용성이 있는 진언을 구한다. 사람이 저울이나 저울추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마음이 바르고 이익을 경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울추는 사람의 그때 그때의 요구에 따라서 그 무게를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저울도 사람들의 기분에 의해서 그 무게를 무겁게 하거나 가볍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명한 군주의 나라에서는 관리는 법을 어기지 않으며, 사욕을 도모하지 않고, 또 뇌물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국내의 모든 일이 저울처럼 함부로 다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하에게 나쁜 일이 있으면 발견되고 처벌된다. 그러므로 도를 깨달은 군주는 청렴결백한 관리를 구하지 않고, 잘못을 발견해 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 韓非子 第47篇 八說[5]-
法所以制事, 事所以名功也. 法立而有難, 權其難而事成, 則立之 事成而有害, 權其害而功多, 則爲之. 無難之法, 無害之功, 天下無有也. 是以拔千丈之都, 敗十萬之衆, 死傷者軍之乘, 甲兵折挫, 士卒死傷, 而賀戰勝得地者, 出其小害計其大利也. 夫沐者有棄髮, 除者傷血肉. 爲人見其難, 因釋其業, 是無術之事也. 先聖有言曰:「規有摩而水有波, 我欲更之, 無奈之何!」 此通權之言也. 是以說有必立而曠於實者, 言有辭拙而急於用者. 故聖人不求無害之言, 而務無易之事. 人之不事衡石者, 非貞廉而遠利也, 石不能爲人多少, 衡不能爲人輕重, 求索不能得, 故人不事也. 明主之國, 官不敢枉法, 吏不敢爲私, 貨賂不行, 是境內之事盡如衡石也. 此其臣有姦者必知, 知者必誅. 是以有道之主, 不求淸潔之吏, 而務必知之術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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