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노자에 대하여
노자(老子)에 대하여
- 史記중에서 -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여향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성은 이(李)씨, 이름은 이(耳), 자(字)는 백양(白陽),시호는 담(聃)이니, 주(周)나라 수장실(守藏室)의 사관(史官)이다.
공자(孔子)가 주나라에 가서 삼가 예에 관해 노자에게 물어보자, 노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그 사람과 뼈는 이미 다 썩었는데 오직 그 말만이 남았을 뿐이다. 또 군자(君子)는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몸이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 속의 쑥대처럼 굴러다닌다고 한다. 내 들으니, 장사를 잘하는 상인은 물화(物貨)를 깊이 간직함을 없는 것처럼 하고, 군자는 성덕(盛德)이 있으나 그 용모는 우매한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대의 교만한 기상과 욕심 많음과 얼굴과 태도를 꾸미는 일과 산만한 뜻을 버려라. 그런 것은 그대의 몸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이것뿐이다.”
공자는 돌아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새가 잘 난다는 것을 안다. 물고기가 잘 헤엄친다는 것도 안다. 짐승이 잘 달린다는 것도 나는 잘 안다. 달아나는 자에게는 그물을 칠 수 있고, 헤엄치는 것에게는 낚시질 할 수 있으며, 나는 것에게는 화살을 쏘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용(龍)에 대하여는 나는 그것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다. 그는 용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노자는 도(道)와 덕(德)을 닦아서, 그의 학문은 스스로 숨기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주나라에 살더니 주나라의 도가 쇠미하게 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 함곡관(函谷關)에 이르자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말하였다.
“선생께서 장차 숨으시려 하시는데, 귀찮으시더라도 저를 위하여 글을 지어 주십시오.”
이에 도덕경(道德經) 상하편을 지어 오천여언(五千餘言)으로 도(道)와 덕(德)의 뜻을 말하고 가버렸는데, 그의 최후를 아는 이가 없다.
어떤 이는 말한다.
“노래자(老萊子)도 또한 초(楚)나라 사람이다. 책 15권을 지어서 도가(道家)의 효용을 말하였는데, 공자와 같은 때의 사람이다.”
대체로 노자는 160여세를 살았다고도 하고 200여세를 살았다고도 한다. 그가 도를 닦고 덕을 길렀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가 죽은 뒤 129년의 사관(史官)의 기록에 의하면, 주(周)나라의 태사(太史) 담(聃)이 진(秦)나라의 헌공(獻公)을 뵙고,
“처음에 진나라는 주나라와 합하였다가 합한 지 500년 뒤에 분리하고, 분리한 지 70년이 되면 패왕( 王)이 될 자가 나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어떤 이는 담이 곧 노자라고 하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도 진정 그러한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 노자는 숨은 군자였다.
노자의 아들 이름은 종(宗)이니 위(魏)나라의 장군이 되어 은간(殷干)을 봉읍(封邑)으로 하는 봉작을 받았다. 종의 아들은 주(注), 주의 아들은 궁(宮)의 현손(玄孫)은 가(假)이니 가는 한(漢)나라 효문제(孝文帝)에게 벼슬하였다. 그리고 가의 아들 해(解)는 교서왕(膠西王) 앙의 태부(太簿)가 되고 그로 인하여 제(齊)나라에 정주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사람들은 유학(儒學)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이는 또한 노자를 배척한다.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이(李耳)는 작위(作爲)함이 없이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바르게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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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 ?∼?
중국 고대의 도가(道家)사상의 시조가 되는 인물 또는 그가 저술한 책명.
〔인 물〕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성(姓)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字)는 담(聃), 춘추시대에 초나라의 고현(苦縣)에서 태어났다. 주(周)나라 왕실의 수장실리(守藏室吏 도서 관리인)를 지냈다. 공자가 방문하여 예(禮)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에 주나라가 쇠퇴하는 것을 보고 은거를 결심하고 서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도중, 관문에서 관문지기 관윤희(關尹喜)의 청에 의해 상하 2편의 책을 저술한 후 떠났는데 행방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설에는 의문시되는 점이 많고, 그것을 전하는 가장 오랜 자료 사기(史記)의 노자전에서도 의문을 표명하고 있어, 공자의 선배로서 BC 6세기에 활약한 인물이라는 실재성은 희박하다. 오늘날의 학설로서는 BC 479년에 죽은 공자보다 100년 정도 후배라는 설과, 가공의 인물로서 실재를 부정하는 설 등이 있다. 요컨대, 분명하지 않고 현존하는 책과 결부하여 생각하면 춘추전국시대의 중기(BC 4세기)보다 올라갈 수는 없다.
〔서 적〕
노자 2편은 도덕경이라고도 불린다. 상편이 도(道)자로 시작되므로 도경, 하편이 덕(德)자로 시작되므로 덕경, 즉 이들을 합친 명칭이나, 유교의 도덕과는 달리 우주인생의 근원과 그 활동을 나타내는 말이다. 내용은 약 5000자. 현재는 81장으로 나뉘어 있지만 이것이 최초의 형태는 아니다. 문장은 간결한 격언적 표현의 집적으로 대구(封句)와 각운(脚韻)을 많이 썼고 의표를 찌르는 역설적인 말이 특색이다. 민간에 널리 구전되어 온 속담과 격언을 모은 듯한 느낌이다. 따라서 세속적인 이야기와 함께 비유적인 난해한 어구도 많고 고래의 해석에도 이설(異說)이 많다. 완성된 것은 전국시대 말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주석(註釋)의 수는 대단히 많지만 위(魏)나라 왕필(王弼)의 주가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랜 것으로 무(無)의 철학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하상공(河上公)의 주는 치신치국(治身治國)의 현실적 해석 외에 양생(養生)에 관계하는 신선도교(神仙道敎)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 두 가지가 고주(古註)의 대표적인 것이다.
*** 道德經 ***
중국의 사상가이며 도가철학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저서. 노자 또는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한다. 약 5000자, 81장으로 되어 있으며, 상편 37장의 내용을 도경(道經), 하편 44장의 내용을 덕경(德經)이라고 한다. 원래 도덕경은 상· 하로만 나누어졌을 뿐이지만 장구지학(章句之學)이 성행한 한대(漢代)에 들어와서 장· 절로 나누어진 것으로 보인다. 도덕경의 구성체제에 대해서는 한 사람이 한꺼번에 저술하였다는 관점과, 도가학파의 손에 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당시의 여러 사상을 융합시켜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이 있다. 한 사람의 전작물임을 주장하는 관점은 노자를 공자와 같은 시대의 실존인물로 보아 도덕경을 그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부정하는 관점은 노자가 가공인물이며 설사 실존인물이라 하여도 도덕경과는 상관이 없다는 관점에서 현존하는 도덕경은 여러 사람에 의하여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이루는 기본사상은 변함없이 < 무위자연(無爲自然)> 의 사상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유가사상은 인· 의· 예· 지의 덕목을 설정하여 예교(禮敎)를 강조하면서 현실적인 상쟁대립이 전제된 반면, 도덕경의 사상은 상쟁의 대립이 인위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보고 무(無)와 자연의 불상쟁(不相爭)논리를 펴나간 것이다. 이러한 도덕경의 사상은 학문적인 진리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위· 진· 남북조 시대와 같은 혼란기에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혜를 밝혀주는 수양서로서도 받아들여졌으며, 민간신앙과 융합되면서 피지배계급에게 호소력을 지닌 사상 및 세계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국에서도 도덕경에 나오는 내용이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도덕경의 기본흐름은 일찍부터 도교신앙과 접합되어서 민중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기층의 민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 상〕
노자사상의 중심은 개인적 또는 정치적인 성공을 쟁취하기 위한 무위(無爲)의 술(術)에 대해 논하고, 이를 위한 근거로서 형이상학적 근원인 도(道)를 논하는 것이었다. 우선 도란 이것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이것을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으며… 혼합하여 하나가 된다와 같이 감각을 초월한 하나의 것으로 천지만물의 존재에 앞서 독립자존하며 그 위에 큰 현실적인 활동을 수행한다. 즉,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와 같이 만물생성의 근원으로서 천하의 어머니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을 포함한 세계의 존재는 모두 도에 의해서 각각 본연의 자세를 수행한다. 그래서 만물은 도에 따라 있는 그대로(자연 그대로) 있지만, 인간은 사욕(私慾)으로 인해 종종 도를 벗어난다. 이것이 인간의 불행이다. 그래서 단지 도만을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약은 꾀를 버리고 고의적 소행을 피하는 무위(無爲)의 입장에 몸을 놓고 무욕(無慾)이 되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말고, 약하게, 겸손하게 행하는 것이 좋다. 무위이면서 무위함이 없다 즉, 무위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도의 큰 활동은 그 활동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 자연 본연의 모습이므로 사람은 그것을 모범으로 하여 도의 절대세계에 복귀하라는 사상이다. 노자의 사상은 열자(列子)와 장자(莊子)에게 계승된다. 단 열자의 현실적 세속적인 성공주의와 장자의 관념적· 사변적인 철학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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