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 - 호평이든 악평이든 마찬가지다(7.양주.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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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이든 악평이든 마찬가지다(7.양주.13)

 

호평이든 악평이든 마찬가지다

- 열자;제7편 양주[13]-

양주가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을 말할 때는 그 예로서 순임금과 우임금과 주공과 공자 같은 사람을 들고, 천하에서 가장 나쁜 사람을 말할 때는 그 예로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임금 같은 사람을 든다. 그러나 순임금은 임금이 되기 전에 하양 땅에서 밭을 갈았고, 뇌택이라는 곳에서 질그릇을 구웠다. 그래서 그의 사지는 편할 날이 없었고, 입과 배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했고, 부모에게는 사랑을 받지 못했고, 형제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못했고, 나이 삼십이 되어서 부모의 허락도 없이 결혼을 했다. 순임금이 요임금에게서 나라를 물려받을 때에는 이미 나이가 들어서 지력도 이미 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상균에게는 나라를 다스릴 만한 재능이 없었다. 그는 임금자리를 우에게 물려주고는 퍽 괴롭게 생각하다가 죽게 되었다. 이것은 하늘과 사람이 다 같이 근심하고 괴롭게 여기는 사람이다.

곤은 물과 흙을 다스렸으나 적용이 따르지 않아 그를 우산에서 죽였다. 우는 업을 이어 받고 순을 섬겨 오직 토목공사를 크게 했고, 아들을 낳았어도 가보지 못하고 사랑해 주지도 못했다.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 보지 않았고, 몸은 마르고 손과 발에는 못이 박혔다. 순임금에게 나라를 물려받아 궁실을 낮추고, 임금자리를 아름답게 여기면서 슬퍼하며 죽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하늘과 사람이 근심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무왕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성왕은 나이가 어려서 주공이 그를 대신하여 정치를 했다. 소공이란 사람은 주공이 그렇게 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방 여러 나라에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가 동으로 은나라를 정벌한 지 삼 년 만에 마침내는 형을 죽이고 아우를 추방한 후 겨우 자기 몸만 살아나서 고민하다가 죽게 되었다. 이런 사람은 하늘과 사람이 다 같이 위험스럽고 두렵게 여기는 사람이다.

공자는 옛 임금들의 도를 밝히고 그 당시 임금들에게 명성을 얻어 초빙에 응하여 분주히 돌아다녔다. 송나라에 갔었을 때에는 제자들과 같이 예를 익히던 나무가 찍혔고, 위나라에 가서는 추방을 당했고, 상나라와 주나라의 서울에 가서는 여러 가지 곤란을 당했고, 진나라와 채나라에 가서는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죽을 위기를 당하였고, 노나라에 있을 때에는 계씨에게 굴욕을 당하였고, 계씨의 부하 양호에게도 모욕을 당하여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죽게 되었다. 이런 사람은 하늘과 백성들이 다 하루도 편안히 앉아 있을 사이 없이 분주히 돌아다니던 사람이라고 했다.

이상의 네 성인들은 모두 단 하루도 즐겁게 살아보지 못하였고, 죽어서는 만세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본래 이름이라는 것은 사실과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록 이름이 났다 해도 죽은 사람은 모르고, 또 표창을 한다 해도 죽은 뒤에는 모른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나무 등걸이나 흙덩이와 다름이 없다.

하나라의 걸왕은 조상 때부터 여러 대를 물려 내려온 재산을 이어받고, 높은 임금자리에 앉아서, 지혜는 여러 신하의 말을 거부할 수 있었고, 위엄은 천하를 진동시킬 수 있었다. 귀로 듣고 싶고, 눈으로 보고 싶은 모든 오락을 멋대로 즐겼고,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다하여 즐겁게 살다가 마침내는 역시 죽어버렸다. 이런 사람은 하늘과 사람이 다 같이 안일하고 방탕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은나라의 주왕도 역시 조상 때부터 여러 대를 물려 내려오던 재산을 이어받고, 높은 임금의 자리에 앉아서, 위엄은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었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못할 것이 없었고, 정열을 넓은 궁전에 폈고, 욕망은 긴긴 밤에 채워, 예의로 자기를 괴롭히지 않았고, 즐겁게 살다가 마침내는 피살되었다. 이런 사람은 하늘과 사람이 다 같이 아주 방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상의 두 흉악한 임금은 살아서는 자기의 욕망대로 즐거워했고, 죽어서는 우매하고 포악하였다는 이름을 남겼다. 사실이라는 것은 본래 이름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죽은 사람을 훼손하여도 모르고, 칭찬하여도 모른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은 나무등걸이나 흙덩이와 다를 것이 없다.

순임금과 우임금과 주공과 공자 같은 네 성인은 비록 좋은 이름을 얻었으나 나중까지 괴로워하다가 마침내는 다 죽게 되었다. 또 걸왕과 주왕은 흉악하다는 악명을 얻었으나 나중까지 즐거워 하다가 역시 다 같이 죽게 되었다.”

- 列子;第7篇 楊朱[13]-

楊朱曰:「天下之美. 歸之舜‧禹‧周‧孔, 天下之惡歸之桀‧紂. 然而舜耕於河陽, 陶於雷澤, 四體不得暫安, 口腹不得美厚 父母之所不愛, 弟妹之所不親. 行年三十, 不告而娶. 及受堯之禪, 年已長, 智已衰. 商鈞不才, 禪位於禹, 戚戚然以至於死:此天人之窮毒者也.

鮌治水土, 績用不就, 殛諸羽山. 禹纂業事讎, 惟荒土功, 子産不字, 過門不入 身體偏枯, 手足胼胝. 及受舜禪, 卑宮室, 美紱冕, 戚戚然以至於死: 此天人之憂苦者也. 武王旣終, 成王幼弱, 周公攝天子之政. 邵公不悅, 四國流言. 居東三年, 誅兄放弟, 僅免其身, 戚戚然以至於死: 此天人之危懼者也. 孔子明帝王之道, 應時君之聘, 伐樹於宋, 削迹於衛, 窮於商周, 圍於陳蔡, 受屈於季氏, 見辱於陽虎, 戚戚然以至於死:此天民之遑遽者也. 凡彼四聖者, 生無一日之歡, 死有萬世之名. 名者, 固非實之所取也. 雖稱之弗知, 雖賞之不知, 與株塊無以異矣. 桀藉累世之資, 居南面之尊, 智足以距羣下, 威足以震海內 恣耳目之所娛, 窮意慮之所爲, 熙熙然從至於死:此天民之逸蕩者也. 紂亦藉累世之資, 居南面之尊 威無不行, 志無不從 肆情於傾宮, 縱欲於長夜 不以禮義自苦, 熙熙然以至於誅:此天民之放縱者也. 彼二凶也, 生有縱欲之歡, 死被愚暴之名. 實者固非名之所與也, 雖毁之不知, 雖稱之弗知, 此與株塊奚以異矣. 彼四聖雖美之所歸, 苦以至終, 亦同於死矣. 彼二凶雖惡之所歸, 樂以至終, 亦同歸於死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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